not music2013. 3. 16. 08:00


2010년대의 영한사전이 이전과 다른 결정적인 차이는 번역사전의 등장이다. 콜린스, 옥스포드, 롱맨, 맥밀란, 웹스터 등 유명한 영어사전 대부분이 영한사전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이제 이전처럼 영한사전을 한국의 출판사가 자체적으로 출간하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에게 외국어사전의 의미는 무엇일까 고민되는 시기가 아닐 수 없다.


영어 교육 시장의 팽창은 21세기 들어 더 가속화되었다. 영어는 학원 등에서 이루어지던 사교육을 넘어 공교육과 유아교육 안으로 들어가 학생을 영어사용환경에 거의 집어넣다시피 하는 몰입교육이 각광받을 정도이다. 하지만 국내의 영어사전 생산은 이전에 비해 줄었는데 이것은 사전의 수익모델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두가지 원인이 예상되는데 하나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환경 때문에 사전을 무료로 볼 수 있는 경로가 늘었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영어학습의 도구로서 사전이 가지는 의미가 줄었다는 것이다.


학생수가 줄고 경제력이 줄지 않았기 때문에 인당 영어교육 비용이 늘었다. 그리고 영어교육이 입시영어에서 실용영어로 대폭 이동해서 읽기보다는 듣기/말하기/쓰기 쪽을 더 강화하고 있다. 그 결과 조기유학자가 급격히 늘었으며 영어학습 유형도 어휘 암기 보다는 문장과 패턴을 익숙해질때까지 반복해서 접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사전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람들은 이전보다 영어학습의 도구로 사전을 선택하지 않는 경향으로 가고있다.


영어사전을 뜯어먹는다는 표현처럼 전통적인 방법으로 암기하는 영어학습을 더이상 하지 않지만 영한사전은 여전히 영어 어휘를 확인하기 위한 기본 참고서이다. 이전에 비해 좀 더 기본에 가깝게 활용되고 있는 것 뿐이다. 용도가 번역이거나, 독해이거나 의미의 저장고라는 기본 용도는 바뀌지 않는다.


인터넷 시대가 정보 유통 속도를 빠르게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새로운 영어 어휘의 출현 속도도 또 그것을 정리해내는 속도도 빨라졌다. 하지만 그것이 이전과 같은 형식으로 정교하게 정리되어 읽히기 보단 더 인터넷답게 소비된다. 대표적인 것이 화면에서 마우스만 대면 한줄짜리 의미가 나오는 툴팁형 사전이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책의 단어를 찍으면 의미가 흘러가는 사전앱 등이다. 어떤 형태로든 생산과 소비는 이루어질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 지점에서 거의 만능 아니었던가.


그보다 중요한 것은 외국어에 대한 태도이다. 이전과 같은 사전의 번안시대(국내 자체 출간)를 지나 사전의 번역시대로 갔다는 것, 그리고 영어를 좀 더 직접적으로 몰입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은 결국 외국어와 외국문화를 이전에 비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아니 비판할 시간적인 틈조차 없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외국어 계통의 고유명사를 모두 미국 영어식 발음으로 적으려는 시도가 생긴다거나 한국어를 말하면서도 영어식 문법구조를 따르게 되어 이상한 한국어를 이상하다는 느낌조차 없이 쓴다거나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영어 의사소통을 잘한다는 것 만이 목적이라면 이같은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문화를 번역한다라고 생각하면 영어만 생각할 수는 없다. 무엇이 적절한 한국어 표현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이같은 고민은 경제적 조건과는 무관하다는 점이 안타깝다. 어쩌면 누군가는 나에게 그런 고민할 시간에 영어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의 영어사전은 이전에 비해 좀 더 종속적이다.





Posted by zepe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