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music2014. 8. 21. 15:05

어쩌면 도서관의 가장 쓸쓸한 공간이 사전이나 참고도서가 있는 서가 아닐까 싶다. 일단 대출이 안되는 책들이기도 하고 이 책들이 해줘야 하는 역할을 어느새 검색엔진이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도서는 무겁고 커서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뒤진다고 해도 내가 찾는 정보가 있으리라는 보장도 하기 힘들어졌다. 그러다보니 개정판도 안나오고 시간이 갈수록 흘러간 정보가 쌓여있는 공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서점을 가든 도서관을 가든 나는 아무래도 사전 만드는 사람이다 보니까 그 공간에 항상 들리곤 했다. 조금 한적하지만 대신 나만을 위한 느낌도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누가 책을 사다 쌓아놓기만 하는 것을 적독(積讀)이라 미화했다던데 사실 책등을 훑으며 책제목과 저자, 출판사명을 읽는 것은 지식의 지도를 훑어나가는 나름 중요한 독서행위다. 나는 참고도서 서가를 훑으면서 종종 적독을 해왔다. 그 사전들을 집에 쌓아둘 공간도 재력도 없는 나로서는 무척 고마운 일이다. 도서관들마다 장서량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도서관에 가면 기존에 봤던 사전들도 새로운 모습으로 보이곤 했었다.

 

게다가 옛날 사전과 요즘 사전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면 새로운 자극을 받곤 한다. 옛날엔 이렇게도 잘도 사용했었구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옛 사람들이 책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해왔던 여러가지 색인 방법들을 보다보면 대단하다 싶을 때도 있다. 혹시 역순사전이라고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보통 사전은 가나다순 배열이기 때문에 ‘경험, 술집, 시집, 시험, 옆집, 위험, 하숙집’ 형태이다. 하지만 파생어를 볼 때는 ‘술집, 시집, 옆집, 하숙집’과 ‘경험, 시험, 위험’으로 나누어보는 것이 더 편리하다. 이런 작업을 해준 것이 어휘의 배열순서를 마지막 음절부터 정렬해준 역순사전이다. 지금은 IT가 금방 해결해주는 일이지만 이것을 종이책으로 구현한 것은 상당히 참신한 아이디어다.

 

그리고 가나다 순으로 배열하지 않은 몇몇 주제별 사전들을 보면 편집자의 의도가 느껴지기 때문에 재미가 있다. 그들의 세계관과 학술접근 방법론에 기반하여 내용을 배열했기 때문에 목차만 봐도 공부가 된다. 브리태니커 영문판은 한때 매크로피디아와 마이크로피디아로 나누어서 개념을 전반적으로 서술하는 접근과 개별 소항목 단위로 내용을 서술하는 접근의 두가지를 병행했다. ‘철학’의 개요나 ‘국가’의 개요를 먼저 풀어준 뒤에 관련항목들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 역시 인터넷 백과사전에서는 얻을 수 없는 맛이 있다.

 

지금 나는 한두가지 사례를 들어서 도서관에 참고도서 서가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외려 얼른 도서관 참고도서는 DB로 만든 다음 모두 치워버리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 이용량이 줄면 줄었지 더 늘어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이버가 수백억을 들여 지식백과를 구축했으니 그것을 최대한 이용해주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다. 심지어 자주 이용하면서 짬짬이 칭찬과 더 원하는 사전을 섞어주면 더 열심히 서비스하는 사전을 늘려나갈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두 곳의 도서관은 참고도서를 체계적으로 분류, 보존할 필요가 있다. 개별 도서관 입장에서는 분명 참고도서들이 애물단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네가 만들어놓은 사전들을 어딘가에서는 아카이브로 쌓아둬야 한다. 자료이기 때문에 모아두는 것이 아니라 모아뒀기 때문에 자료가 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봐왔고 사전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다수의 사전들이 외국 사전들의 영향 아래에 있었거나 베껴가며 만든 것이라 부끄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역사를 외면하지 말아야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것도 분명하다. 사전 아카이브를 만드는 것은 그 시작점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부평구립도서관 소식지 북소리 24호 (2014년)



Posted by zepe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