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music2014. 5. 1. 22:47

종이사전이 죽고 웹사전의 시대가 왔다라고 적으면 뭔가 제목 뽑기도 좋고 직관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그런 단순화는 종종 문제를 피상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 현상의 좀 더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면 ‘참고’라는 본질적인 행동이 놓여있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을 ‘참고’해보면 첫번째 의미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어떤 자료를 살펴서 도움이 될 만한 것으로 삼음. 또는 살펴서 도움이 될 만한 재료.”

 

즉 참고할만한 자료(reference)를 꾸준히 들여다봐야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가 있고, 우리는 참고서(!)를 보거나 가이드북을 보거나 사회과 부도를 보거나 하는 식으로 참고하는 습관을 가져왔다. 그 참고서(보다는 공구서라 적어야 더 선명하다) 중 대표적인 것이 종이시대엔 사전이었고 웹시대에는 검색인 것이다. 매체가 바뀌었고 그에 따라서 참고라는 행위가 바뀐 것이지 매체 읽기는 여전히 이루어지고 참고하기도 다들 계속 하고 있다. 지금의 검색 사용량을 보면 되려 참고 행위 자체는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장년층은 종이사전을 더 선호할 것이고, 청년들은 검색이 어색하지 않을 것이고, 어린 분들은 PC보다도 스마트폰 쪽이 더 익숙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사전에서 참고해야 할 것들을 검색으로 참고해버리는 경우가 늘었다. 내가 쓴 영어 관용구가 잘 쓴건가 확인해보려면 구글에 가서 검색해보자. 결과가 많이 나오면 안심하고 쓸 수 있다. 개념에 대한 설명도 백과사전식의 딱딱한 설명보다는 누가 블로그에 서술해 둔 것이 이해도 쉽고 편하다. 이렇게 검색은 기존 사전이 해오던 일들을 빠르게 대체했다. 그러면 사전은 무용지물이 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검색 서비스들은 대부분 첫번째 검색결과로 사전을 내놓는다. 사전은 ‘최소한의 검색’이자 ‘검색결과의 뼈대’이기 때문이다. 사전 내용은 주관적인 내용이 거의 제거되어 정보의 순도가 높다. 따라서 뭔가 다른 것을 읽기 전에 사전 내용을 읽으면 짧은 시간 내에 내용의 대강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검색 결과 상단처럼 비싼 영역에 사전 내용이 나오는 것이다. 단지 이전에 사전이 시원하게 긁어주지 못하던 부분까지 검색이 긁어주고 있기 때문에 사전은 몰락해가는거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사전은 없어지지 않으며 정보의 순도를 높이는 형식으로서 앞으로도 계속 의미있는 컨텐츠로 남아있을 것이다.

 

라는 것은 내 바람일 뿐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의미있는 컨텐츠로 남을 것이라는 전망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사전 자체로는 재생산 가능할 정도의 돈을 벌지 못한다. 그 때문에 다수의 사전 출판사가 편집팀을 해체했고 개정판이 나오지 못하는 상태가 거의 10년이상 지속되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사전의 위기라고 부르고 있다. 대책은 딱히 세우지 못하고 부르고만 있다. 한국어사전, 영어사전이 십여종씩 나오던 다양성의 시대는 확실히 끝난 것 같고, 두세 종류의 사전이 나오되 그것들이 어떻게 꾸준히 개정되게 할 것인가도 난제로 보이는 시대이다. 한국어사전은 국립국어원이나 고려대학교 같은 곳에서 어떻게든 만들어내고 있지만, 영한사전 조차도 옥스포드나 코빌드 사전의 번역판을 봐야하는 상태이다. 그 사전들도 그다지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영미권에서 개정판이 나왔을 때 꾸준히 번역될지 지금으로서는 장담하기 어렵다. 나머지 언어들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언젠가 이후 변화가 멈춰버린 사전들이 대부분이다.

 

개정되지 않는 사전이라는 것은 곧 넘어질 것만 같은 자전거와 같은 것이다. 계속 페달을 밟아야 앞으로 나아가는데 지금은 누구도 페달을 밟지 않은 채 ‘아직 넘어지진 않았네’ 하며 지내고 있다. 사전 만드는데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 얼마전에 개봉한 일본영화 ‘행복한 사전’(舟を編む, 2013)을 보면 젊은이로 입사한 편집자가 백발이 성성해질 무렵에나 겨우 사전 출간을 성사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세계적 명성을 가진 옥스포드 영어사전(OED)이 70년(1857-1928), 그림 독일어사전(DWB)이 100년이상(1838-1961) 걸려서 겨우 완간했다. 즉 긴 시간과 그에 따른 지속적인 투자가 없이는 사전 편찬이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제 사전으로는 돈도 못번다. 하지만 사전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은 당위이고, 거짓말 좀 보태서 사전이 없으면 학문의 기초가 붕괴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사전은 이미 공공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누구의 것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없으면 살기 괴로워지는 그런 것이 되었다. 누구의 것도 아니기 때문에 혹은 언제든지 무료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누구도 그것에 대해 돈을 지불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미 그렇다면 사전을 우리는 공공재로 간주하고 그에 걸맞게 대응해야 한다. 국가가 되었든 기업이 되었든 좋은 사전을 내놓으라고 요구해야 한다. 웅성웅성 떠들어서 국회의원이 사전진흥법이라도 만들게 해야 한다.

 

물론 지금처럼 그냥 방치해도 어떻게든 사전은 만들어질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위키백과(wikipedia)와 위키사전(wiktionary) 아닌가. 그 외에도 몇몇 개인들에 의해 꾸준히 사전은 나올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사전만 보아서는 객관성을 유지할 수가 없다. 다른 관점의 사전이 두세종류는 있어야 객관화가 가능하다. 일반인들이 집단지성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있다면 전문가들이 학문적인 방법론을 사용해서 만들어나가는 사전 또한 필요하다. 이런 작업을 하려면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그것을 우리가 요구해야 한다는 애기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아무래도 출판 편집자들이 많을 것이니 더 사전 품질에 예민하실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 몇가지를 적어보려 하니 동의하시는 분은 행동해주시면 좋겠다.

 

* 사전 만들기에 매진하는 국립국어원,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이상 한국어 대사전), 브리태니커, 두산동아,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상 백과사전) 등에 가서 격려하기

* 사전 출간을 진흥해야 하는 문화체육관광부나 교육과학기술부에 민원넣기. 특히 한국연구재단(구 학술진흥재단)에.

* 전문용어사전류를 출간해야 하는 국가기관이나 개별 학회, 협회들에 민원넣기. 예를들어 언론/출판용어라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라거나 한국언론진흥재단.

* 사전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 기업인 네이버와 다음 고객센터에 칭찬과 요구사항 넣기. 양사의 사전을 비교해보면 내용과 사전 구축 방향성이 서로 다르므로 함께 사용해보는 것이 좋다.  구글스토어나 앱스토어에 리뷰로 달아주어도 좋으며 당근과 채찍을 함께 써야 효과적이다.

* 자기가 아는 분야인데, 한국어 위키백과에 내용이 부실하다면서 무시하는 사람에게 한국어 위키백과는 기여를 사랑하니 당신도 기여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얘기해주기.

* 출간된지 오래된 컨텐츠라 상업성이 없지만 아까운 컨텐츠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면 한국어 위키백과에 조금이라도 컨텐츠를 기증해서 살려보기. 연보, 해제 등 부분적인 기증도 가능하다. (위키백과측 담당자와는 제가 연결 가능합니다. pinkcrimson@gmail.com)


기획회의 366호(2014년 5월) 기고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3904000187686

Posted by zepe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