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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과 검색 1) 종이사전의 적은 검색엔진

zepelin 2013. 3. 3. 14:24

대중에게 인터넷의 시작은 검색(search)이 아니라 둘러보기(browse)였다. 95년도던가 친구가 웹브라우저 사용법을 알려주던 것이 생각난다. 자 웹브라우저를 실행시켜. 그리고 yahoo.com이라고 입력해봐. 그 다음 분류된 사이트 목록을 살펴서 원하는 사이트로 가면 되는거야. 당시 야후는 수많은 사이트를 정리해서 계통적인 분류를 했다. 도서관의 십진분류체계와 유사하게 다단계 나무구조로 분류했던 것이다. 유사한 한국어 포탈들도 동일한 전략을 취했다. 당시 서퍼(surfer)라는 직군이 있었는데 이 서퍼들은 하루종일 웹서핑을 하면서 새로운 사이트를 찾아 정리하곤 했다. 다른 예를 들자면 둘러보기 방식은 도서관의 서가 분류나 개인 컴퓨터의 폴더 분류 방식이다.


어느날 구글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책이나 도서관의 색인 개념을 확대해서 문서에서 원하는 어휘를 찾아주는 검색기능을 제공하는 회사는 여럿 있었지만, 그 안에서 페이지랭크(pagerank, 문서 피인용도)를 이용한 검색을 내놓은 회사는 구글이었고, 해당 기술로 검색엔진의 수준을 확 끌어올렸다. 검색기능이 좋아질수록 기존 야후방식의 웹서핑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줄어갔다.


사람들이 금방 느끼진 못했지만 웹검색을 하면서 사람들은 사전 사용량 자체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사전 사용도 가나다 순으로 된 책을 순차적으로 찾아나가는 검색행위인데 웹에서 검색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사전 사용량 자체가 줄어든 것이다. 백과사전의 내용은 블로그나 게시판 내용들과 경쟁해야 했으며 어학사전에서 볼 수 있는 뜻풀이와 용례마저도 웹검색하면 상당히 발견할 수 있었다. 웹사전도 웹검색으로 찾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사전검색으로 알 수 없는 내용들까지 웹검색에선 우연히 찾아낼 수 있으니 굳이 책사전이나 웹사전을 고수할 필요가 없다. 즉 기존 백과사전이나 어학사전의 경쟁자는 위키백과나 다른 사전류가 아니라 검색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웹과 검색엔진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에 비례하여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전을 편찬, 생산하는 분야는 지속적으로 줄어갔다. 우리가 기억하는 사전 이름인 민중서림, 두산동아, 시사영어사, 금성출판사 등은 제각기 인력을 최소한으로 유지하거나 편찬팀을 없앴다. 영어사전의 경우 국내 편찬을 포기하고 옥스포드, 롱맨, 콜린스 등의 학습자 사전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중이며 일본어사전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일본어 사전인 코지엔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이는 영어권도 예외가 아니어서 브리태니커 영문판이 2012년 이후 더이상 종이책을 생산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 상징적이고, 맥밀란 영어사전도 2012년에 종이사전 생산 중지를 선언했다.


최근 20여년간 사전은 꾸준히 축소의 길을 걸어왔다. CD롬, 전자사전, 웹 등으로 매체는 바뀌었고, 다양해진 매체를 통해 이전에 비해 이용자들에게는 더 쉽게 전달되었다. 여기까지는 기술적인 진보로 봐도 좋다. 하지만 사전의 생산구조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이제는 수익성 악화로 생산 기반 자체가 전면적으로 무너지는 중이다. 이 지점에서 사전은 그냥 멈춰있어도 좋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앞으로 사전 내용이 늘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은 아니잖은가. 문제 인식의 시작은 여기부터이다. 웹과 검색으로 대체된 부분이 이전보다 더 나아졌으면 그것은 혜택으로 누리면 되고, 이전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개선해야 한다. 어떤 지점이 이전에 비해 부족한지 물어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