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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은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

zepelin 2013. 3. 9. 23:55


1 사전은 공동저작물


사전은 여러 사람의 저작물이다. 한두사람이 십만개 이상의 항목을 기술한다는 것은 무모하거나 긴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에야 저작권의 개념 자체가 별로 없긴 하지만 가장 마음놓고 서로 베끼던 분야가 바로 사전이고 상업 출판물의 시대가 되어도 맨땅에서 사전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선배 사전을 참조하여 온고지신의 방법을 통해 사전을 만들어왔다. 즉 사전은 공동저작물이면서 다른 장르에 비해서도 표절을 입증하기 어려운 저작물이다. 그래서 저술보다는 편저 혹은 편찬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웹에서 성장중인 위키백과의 저작권 정책은 CC(creative commons)를 따르고 있는데 그중 동일조건 변경허락(share alike)이 핵심이다. 위키백과를 변경하여 내용을 갱신했으면 해당 저작물 역시 같은 저작권으로 공개해야하는 것이다. 개인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기여한 사람은 자신의 기여물이 다른 형태로 이용되어도 괜찮다는 것을 알아야 사용할 수 있는 저작권이다. 이것은 개방성이 증폭되는 형태의 저작권이다. 위키백과 편집자들은 자신의 기여가 공공의 이익에 작은 돌 하나를 쌓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기여한다. 그래서 참여자들이 지속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며, 이권이 개입되지 않기 때문에 중립적 시각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공동저작물이라는 특성에 우리는 다시 주목해야 한다. 사전은 주관적인 내용보다는 사실의 논리적 기술에 가깝기 때문에 개인성이 최소화되고 다른 사람도 그정도의 객관성만 유지하면 집필이 가능하다. 사실 이전의 종이사전은 해당 편찬팀의 '소유'였기 때문에 다른 출판업자가 새로 만들려고 하면 대동소이한 내용임에도 다르게 적으려는 어쩌면 불필요한 노력을 해야했다. 이런 한계가 인터넷이라는 환경을 만나서 사라지고 사전은 공동저작물이라는 본연의 특성을 살려나갈 수 있게 되었다.


2 돈


사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든다. 허나 인터넷이 일상에서 쓰이기 시작한 90년대 중반 이후 사전의 매출액은 줄어들기만 해서 지금은 사전업계 전반이 붕괴되기 직전이거나 붕괴상태이다. 그러니 새로운 사전이 나오기 힘든게 당연하다. 이후 사전을 새로 만들지 않겠다면야 모를까 학문을 위해서는 전문 사전이 필수적이다. 학문은 개념을 다루는 것이며 개념은 용어에 응축되는 것이고 용어를 정리한 것이 사전이기 때문이다.


웹에서 파스칼백과나 두산백과사전을 볼 수 있던 초기에 브리태니커는 볼 수 없었다. 웹에서 공개해버리면 CD롬 매출이나 기타 다른 매출을 잠식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백과사전을 무료로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오래 버티기는 어려웠고 결국 미국 본사와의 협의 끝에 브리태니커를 웹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 되었다. 다시말하면 한국에서 백과사전은 '무료'인 것이다. 다른 사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일본도 야후 재팬을 통해 일본대백과 사전을 볼 수 있게 된 것이 최근이며 점차 한국과 같은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백과사전은 경쟁이 그리 치열하지 않았다. 하지만 업체가 여럿 난립해있는 영한사전이나 중한, 일한사전 쪽은 상황이 훨씬 나쁘다. 이미 국내 출판사들 대부분은 사전편찬팀을 해체해서 더이상의 개정판이 나오지 않는다. 경쟁 컨텐츠가 여러개 있으니까 가격하락이 심해서 정말 커피한잔가격이 안되는 비용으로 핸드폰에 탑재되는 형편이다. 잠시 스마트폰 설치형 사전앱을 팔아서 두산동아 같은 경우는 반짝 수익을 내기도 했지만 그것은 단발성일 뿐이어서 지금은 매출이 다시 급감한 상태다. 이전에 비해 전자사전 시장이 없어졌기 때문에 상황은 더 안좋다. 새로운 사전을 만들거나 개정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며, 가끔 영어권 사전이 번역되어 나오는 것도 신기할 지경이다.


모두 무료로 백과사전을 볼 수 있게 된 것 까지는 좋다. 하지만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 나아지는 백과사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현재 백과사전 시장에서 돈을 만드는 것은 어린이백과류와 시사상식백과류 정도이다. 무거운 내용을 가진 백과사전은 팔리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계속 백과사전이 갱신되는 것을 보고싶으면 사전을 공공재로 만들어야 한다. 사전은 기업의 후원이나 대학의 노력, 국가의 지원 등이 결합해서 계속 발전시켜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사전 제작 비용이라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전제조건이다.


공공재라는 것을 우리가 인식시키려면 수없이 떠들어야 한다. 왜 사전이 더 좋아지지 않는가, 좋은 사전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신문이든 방송이든 웹이든 여기저기서 계속 발언을 해야 공공재가 될 수 있다. 정부도 국민에게 서비스하는 곳이기 때문에 칭찬을 듵기 위해서라도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가끔 하지 않는가. 사회적 책임을 묻고싶으면 그것의 중요성에 대해 꾸준히 언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사전을 많이 쓰고 사전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지속적으로 여론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야 노교수들 은퇴한 뒤에 사전 집필이라도 하면서 소일하지 않겠는가. 이를 위해서는 사전에 글을 실어야 석학대접 해주는 문화 또한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애석하게도 현실은 어떠한가 하면 백과사전은 그 컨텐츠 양에 비해 정말 읽히지 않는다. 예전에 백과사전을 질단위로 팔 때야 팔면 끝이었고, 그것이 책장에 있는지 책상에 펼쳐져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허나 지금은 웹상에 로그가 남기 때문에 사람들이 얼마나 백과사전을 읽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영어사전과의 비율로 보자면 10%밖에 되지 않는다. 통합검색에 노출되어서 한번씩 눌러지는 것들을 고려해서 빼면, 그리고 백과사전 페이지 내에서 머무는 시간을 재면, 정말 처참하게 읽히지 않는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사전을 공공재로 만들려면 사전을 먼저 읽어야 한다. 읽고, 내용에 문제가 있다면 제안하고, 더 필요한 내용이 있다면 요구하고, 내용을 인용해야 한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사전은 우리의 수준에 따라갈 것이다. 일본과 독일의 사전의 양과 질에서 왜 압도적인가 하면 그들이 그런 사전을 원하기 때문이다. 일본 서점에 가서 사전코너를 보면 겁날 지경이다. 그들과 우리의 학문 수준 차이가 너무 느껴지니까. 일본어 몰라도 압도될 수 있으니까 기회 되면 서점에 한번 가보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