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music2013. 3. 3. 12:41

하고싶은 얘기를 적지않으면 재미도 없으니까 손가는대로 적어본다. 그런대로 읽을만한 구석이 있다 생각하지만, 사적인 내용 별로 보고싶지 않다 싶으면 안봐도 상관없는 내용들이다.


다들 어려서부터 뭔가 취미를 강요받아왔다. 취미가 뭔가요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TV시청이요 없어요라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고 다들 독서요 음악듣기요 이정도의 얘기로 얼렁뚱땅 넘어가게 된다. 초등학교때 방학숙제로 탐구발표라는게 있었다. 주제를 하나 정해서 열심히 살펴본 다음 수업시간에 공유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초등학생에겐 꽤나 버거운 내용이었다. 그때 내가 정한 주제가 국보1호부터 50호까지 정리하기였다. 번호가 있으니까 순서가 정해진 느낌이 있었고, 조사 범위도 대략 한정적이어서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당시 국보랑 친해둔 덕에 경천사지 십층석탑이라거나 고달사지 부도 따위의 이름도 잘 기억할 수 있었고 이후 조선 역사에도 친근감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후 문화재청과 함께 일할 기회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여튼 일단 시작은 그런거였다.


그 외에 내가 좋아했던건 모두 뭔가 모으는 것이었다. 메모지를 모았고, 지우개를 모았고, 딱지를 모았고, 게임용 카드를 모았고 그랬다. 따먹기도 하고 애들이랑 교환도 하고 그러면서 차곡차곡 모아갔던 것 같다. 뭔가를 모으다보면 정리를 해야만 한다. 정리하지 않으면 감당이 안되지만 정리하면 아름다움마저 느껴졌다. 정리하는 기준은 내맘대로였다. 모양, 색깔, 디자인, 크기... 그렇게 정리해서 상자에 담아두면 '보기에 좋았다'. 그 과정에서 배우는게 있었다. 예를들어 게임용 카드는 대부분 규칙이 비슷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모두 고스톱 규칙이고 디자인만 다른거였다는거. 금메달을 다섯개 받으면 오광이 된다라거나 뭐 그런 식이었다. 지우개는 어떤 지우개가 잘 지워지는지, 어떤 지우개가 빨리 닳는지 등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뭔가 잉여적인 지식이지만 한가지를 많이 하다보니 쌓이는 자연스러운 지식이었다.


자연스럽게 우표로 이어졌다. 우표는 수집 대상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맛을 가지고 있다. 국가별, 도안별, 년도별, 이슈별로 분류방법이 워낙에 다양했다. 초일봉피, 소형시트 등의 특별한 수집물도 있었으며, 우표 발행일에 맞춰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사는 재미가 또 쏠쏠했다. 한 2-3년 신나게 모았다. 새 우표를 사기도 하고, 봉투에 붙어있는 우표를 물에 불려 떼기도 했다. 우표도록을 사서 한국 우표의 역사를 살펴보곤 했었는데 우표의 거래금액을 보면서 무엇이 그 우표의 가격을 결정했을까를 궁금해하고 귀한 우표에 대한 소유욕도 생겼었다. 가장 좋았던건 우표 디자인을 통해 한국 현대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거다. 이승만의 1-3대 대통령 취임우표를 보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고 그건 박정희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전두환의 해외순방 우표는 너무 많아서 얼굴이 혐오스럽게 보일 지경이었다. 민족기록화 우표나 각종 국제회의 기념우표등에는 해당 우표가 발행될 시절의 분위기를 한껏 담겨있었다. 지금도 우표를 좋아하고 우표가게를 지나가면 전시된 우표를 유심히 보곤 한다. 아이들에게 권할만한 취미다.


고등학생때부터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공부하면서 뭔가 방출할 곳이 필요했고, 그건 팝과 메탈을 거쳐 6-70년대 록에서 멎었다. 돈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음반을 모았다. 음반, 특히 LP의 재킷은 하나의 미술품과 같아 모으고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음악보다도 음반이 가진 종합예술적 특성에 끌린 나는 재킷에 특히 신경쓴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장르를 좋아했다. 음반 재킷은 장르별, 시대적 특성을 고스란히 담고있어 나중에는 발매 년도, 악기, 재킷 스타일만 보고도 앨범을 구매할 정도까지 되었다. 역시 앨범도 많아지면서 분류가 필요해졌고 주제별 분류로 갈 것인가 아니면 가나다 순으로 정리할 것인가 등의 문제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외국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것, 한국어를 로마자로 표기하는 것에도 관심을 가졌다. 대학교때 가요 명반을 영어로 소개하는 홈페이지를 하나 운영하면서 가졌던 고민이다. 다양한 문자표기와 언어에 대해 관심가지게 된 것은 모두 유럽 각국의 음반을 모으기 시작한 덕이다. 이때부터 15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는 취미는 록음악 감상이다. 취미로서의 수집은 음악듣기에서 정착한거다.


음악들으면서 친구들(주로 형들)을 만난 곳은 하이텔의 언더그라운드 뮤직 동호회였다. 여기서 형들은 자신들의 음악 지식을 마음껏 뿜어댔고 나는 그들의 떡밥을 덥석덥석 물어가며 앨범을 사모았다. 그때 하이텔이 문을 닫는다 했다. 문을 닫으면 당시 쌓여있던 수많은 프로그레시브 록 관련 글들은 어디로 가나. 그것이 사라지는게 나는 싫었다. 그래서 며칠 날잡고 게시판 전체를 캡쳐했다. 그렇게 모은 게시물은 밴드별로 정리해서 홈페이지에 올렸고, 지금도 볼 수 있다. 당시 내 관심사는 축적(아카이빙)이었던 것 같다. 조선왕조실록같은 기록물이 있는데 왜 중요한 것들을 축적하지 못할까. 내가 있는 공간에서도 축적이 안되는 것을 보고싶지 않았다. 


그렇게 축적한 것이 의미있는 형태로 되려면 정리가 필요하다. 데이터베이스가 되어야 접근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데이터베이스를 고민했다. 제목을 어떤 기준으로 적을 것인가, 앨범명이 어떻게 년도별로 나오게 할 것인가, 검색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다가 나는 제로보드라는 웹게시판을 선택했고 그것을 음반 DB에 맞게 고친 버전을 찾아 적용시켰다. 하지만 계속 부족함을 느꼈다. 내가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한계가 있었다. 프로그래머였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좀 버거웠을 것이다. 그러다가 위키위키라는 솔루션을 만났고 지금은 그 위키서비스에 기사들을 넣어둔 상태이다. 위키백과를 이루고 있는 바로 그 위키위키 시스템 맞다. 위키위키도 혼자서 작업하기 버거운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언제든 손대서 고쳐나갈 수 있는 환경까지는 만들어볼 수 있었다. 음악 데이터베이스를 고민하는 시간은 내가 축적과 정리라는 두가지 주제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했다.


직장생활 초년병 시절에 나는 메신저(네이트온이나 카카오톡 같은)와 무선인터넷을 기획하던 초보기획자였다. 하지만 뭔가 불편했다. 내가 이걸 하고싶은거 맞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러다가 내가 읽은 책들에 대해 되돌아보니 주로 역사책과 언어(번역)에 관한 책을 읽고있다는걸 새삼 깨닫게 된 거다. 어떻게든 하고싶은 것을 해보자라고 여러가지 생각을 해봤다. 음악 DB를 만드는 것은 재미있어보이지만 나보다 더 잘할 사람이 많아 보였다. 역사와 인터넷을 조합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고. 그래서 고른게 언어와 인터넷의 결합인, 검색과 사전만들기다. 인터넷 사전을 쓰면서 불편해하던게 한두개가 아니었고, 뭔가 지식iN으로는 안되는 지식의 축적형태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경쟁시스템을 도입한 사전서비스의 기획안을 작성해서 무작정 네이버를 찾아갔다. 그래서 일하게 된게 사전이고 어느새 사전서비스를 십년간이나 만들고 있다. 수집-정리의 최후 단계인 언어/어휘 수집으로 들어온 셈이다. 


결국 내가 사전과 데이터베이스에 계속 관심가지고 작업하는 이유는 정보에 편하게 접근하고싶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것을 보면 화가나고 급기야 고쳐대기 시작한다. 직업과 적성이 그런대로 맞은 모양이다. 내가 하고싶은 것을 더 손대고 싶긴 하지만 직장인이라 맘대로 안되는게 아쉬울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근본적인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싶다.


이쯤에서 끝냈어도 좋았겠지만 뭔가 나를 포장하려한 혐의가 든다. 사실 나는 분류와 정리에 대한 강박, 집착이 있다. 난 이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이 강박은 현재 나를 움직이고 있는 추동력이다. 내가 이렇게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분류에서 의미를 잃는다면 한동안 내 삶은 휘청할거다.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High Fidelity, 2000)를 보면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며 음반을 정리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알파벳순으로 했다가, 장르별로 했다가, 구매시간순으로 했다가 이런 식이다. 그는 상실감을 벗어나보려 이런 행동을 한다. 그건 종종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같을 수도 있다. 정리가 더 엉망이 될 수도 있고. 그는 정리를 '하고 싶'은 상태인거다. 게다가 이 정리라는게 끝이 없다. 방금 예로 든 음반 정리도 새로 산 음반이 늘어나면 이것을 어디에 꼽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C로 시작하는 음반이 많아지만 C이하 뒤쪽을 전부 뒤로 밀어야 하는 일이 생기는거다. 시지푸스가 돌덩이를 끝없이 언덕위로 굴려올려야 하는, 그런 종류의 일이다. 데이터를 정리한다는건 그걸 다 알면서도 끝없이 하는 그런 일이다. 종종 허무한데 이 허무감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지속가능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 수 있는가. 이게 내 상태인 것 같다. 웹사전 만들기는 내 이런 강박의 표현이다.


사실 이런 강박이 개별적으로 발현되었을 때는 반딧불 정도가 아닐까 싶다. 깜깜한 밤에 나름대로 깜찍한 재미를 선사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어둠을 밝힐 정도는 못된다는 말이다. 반딧불이 백마리 만마리가 모여 엉덩이를 맞대야 주변이라도 밝힐 수 있다. 이걸 말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집단지성이라 부른다. 위키백과는 이 엉덩이 맞대는 방식 중에서 가장 성공한 것이고. 어떻게 하면 내 강박이 남의 강박과 잘 결합해서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어쩌면 의미있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상태가 바로 강박일 수도 있겠지만. 기왕이면 내가 한거 남은 또 반복해서 안하면 좋겠다, 이정도의 소박한 마음으로 봐도 좋겠다. 이정도의 마음을 가지고 오늘도 사전을 편집한다.





Posted by zepe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