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music2013. 3. 9. 21:57

1 인터넷 이전의 백과사전


2012년에 브리태니커 영어판이 종이책 출간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사실 그보다 몇년 전에 이미 브리태니커 한국어판은 종이책 출간이 정지된 상태였다. 예견된 일이었고 다들 조금 놀라는 척 하면서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시대의 백과사전은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이 글을 쓴다.


백과사전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백과사전의 기능은 궁금한 뭔가를 찾아보기 위한 것이다. 백과(百科)라는 말이 '세상의 모든 분야'라는 의미를 담고있다. 궁금한 점을 찾는 절대적인 참고처로 만들기 위해 백과사전은 검증된 지식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며 분야별로 공정하게 할애된 분량을 가진, 인간 지식의 총체적 요약이라는 성격을 가져왔다.


초기의 백과사전들은 요즘의 시사상식사전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것이 한가지 주제를 가질 수도 있고 여러가지를 포괄할 수도 있지만 주된 목적은 특정 분야의 도구 혹은 지적 유희의 대상 정도였다. 그러다가 서구에선 디드로의 백과전서가, 동양에선 사고전서가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는데 이 두 총서는 당대의 지식을 재정의하려는 목적에서 지식을 수집/재편집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즉 지식 정리하는 행위 자체가 정치적인 것임을 의식하고 있었다. 백과전서는 혁명적이었고 사고전서는 보수적이었다는 점에서 그 엇갈림이 흥미진진하다. 이후 동양을 압도하는 서구문명의 힘은 이 지점에서 갈렸는지도 모르겠다.


이후 근대를 관통하면서 백과사전은 당대 지식의 총체이자 최고 권위자의 역할을 다했다. 백과사전에 수록되느냐 아니냐가 당대에 인정받은 지식의 기준이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그 상징적 존재였고 전 세계 다른 백과사전의 귀감이 되었다.


전문용어사전은 백과가 아닌 일과(一科)에 특화된 백과사전이다. 전문용어사전은 개별 지식에 대한 설명이라는 면에서는 백과사전과 유사하며 해당 영역의 전문용어의 뜻풀이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어학사전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전문용어가 대중성을 얻으면 어학사전에 등재되는 일도 많이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해당 항목을 설명하는 종류의 참고서적이며 전문용어사전이 여러개 모이면 백과사전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백과사전이 근대 이후의 세계관을 반영한 책이라면 전문용어사전은 근대 이후의 실질적 문명 개화를 지탱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 학문의 기본은 해당 분야의 전문용어를 규정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동일한 용어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혼선을 줄이는 최선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백과사전과 전문용어사전은 모두 책으로 출간되는 것이 기본이었으므로 판과 쇄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수요가 늘면 쇄를 늘리고, 시간이 지나 고쳐야 할 시점이 되면 저자들이 모여 판을 고치는 방식이 그것이다. 하지만 책이라는 매체에서 인터넷이라는 매체로 변화하면서 이 두 사전은 변화를 겪어야 했다.


2 인터넷 이후의 백과사전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궁금한 뭔가를 찾는 대상이 백과사전에서 인터넷 검색으로 바뀌었다. 백과사전은 정보의 양과 실시간성에서 인터넷을 따라가지 못한다. 백과사전마저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환경에서 백과사전과 인터넷의 우위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뭔가를 찾는 기능은 검색엔진에 완전히 패배했다.


전통적 백과사전은 위키백과라는 또다른 대항세력을 맞았다. 불특정 다수가 집필하는 방식의 위키백과는 소수의 훈련받은 전문가가 집필하는 전통적인 백과사전을 양과 질에서 압도하기 시작했다. 400만 항목에 육박하는 영어 위키백과는 10여만 항목의 브리태니커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규모를 가지고 있다. 뭔가를 기술하는 기능에서도 전통적인 백과사전은 새로운 백과사전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전통적인 백과사전은 지금까지 그리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구글이 검색 성능을 끌어올리고 위키백과가 웹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후 백과사전이 종이책 출간을 멈추고 웹상에서 기동성을 확보한다는 판단을 내리기까지 10년 이상 걸렸으니 너무 늦은 셈이다. 사실 종이책 출간을 멈춘 것 뿐이지 내부 집필진이 기동성에 최적화되어 움직이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전통적 백과사전은 꾸준히 개정중이다. 동서문화사에서 사운을 걸다시피해서 출간한 동서 파스칼백과사전은 2002년 이후 전혀 개정되지 않고있다. 2009년까지 야후코리아에서 서비스하다가 지금은 어디서도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두산 두피디아(구 엔싸이버, 동아대백과)의 경우는 두산그룹이 후원하고 또 네이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꾸준히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고 있다. 그리고 글로벌 기업인 브리태니커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어 다음에서 서비스중이다. 단지 이것이 얼마만큼 지속가능한 모델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크다.


백과사전은 개인성보다는 사실의 집약적 편집물이기 때문에 공동편집이라는 방식이 유용하다. 기존 백과사전도 개별 필자에게 편집권이 있지 않고 백과사전 편집부에 편집권이 있었을 정도이다. 편집부에서 필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키위키라는 공동편집 방식에 기반을 서비스 중 가장 폭발적으로 성공한 서비스가 위키백과일 수 있었다.


한국어권에서 위키방식으로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사전으로 위키백과와 엔하위키를 들 수 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전세계적인 위키백과 프로젝트의 한국어판이고 엔하위키는 대중문화의 매니아들이 모여서 만드는 위키로 인터넷 문화와 일본만화 등 하위문화에 민감하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사전을 지향하고 엔하위키는 대중문화 소개페이지에 가까워서 양자는 거의 겹치지 않고 공존 중이다.


초기의 위키백과에 있었던 신뢰도의 의심은 시간이 지나서 많이 사라진 상태이다. 위키백과보다 엄밀하게 쓰여진 글도 별로 없다는 것이 서서히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엔하위키의 경우 엄밀함보다는 재미와 속도를 추구하기 때문에 여기서 신뢰도의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영어 위키백과의 경우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등 전 세계의 입장이 혼재된 상태여서 어떻게 중립적으로 기술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고, 전쟁과 같은 특정 분야에서는 객관적인 시각이나 역사학계의 관점보다는 군사문화 매니아들의 시각이 지배적이어서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위키백과측도 이 문제를 잘 인지하고 있어 꾸준히 개선되고 있지만 참여자들이 워낙 다수이고 복잡도가 높아 개선에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위키방식의 백과사전은 현재 지속적으로 성장중이다. 영어 위키백과의 성장세가 이전에 비해 주춤하다고 하지만 브리태니커의 수십배에 이르는 항목수에 다수의 항목이 실시간 업데이트가 된다는 점에서 인터넷 상의 가장 압도적인 정보원이다. 중국어권은 중국 정부가 위키백과를 차단한 덕분에 위키백과 이외의 다른 위키방식의 사전들이 성장중이다. 한국의 엔하위키나 영어의 TV트롭스(tvtropes.org)등과 같은 위키방식의 상호 보완적 백과사전들이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인터넷 이후의 백과사전은 기존의 백과사전에 비해 용량제약이 사라졌기 때문에 무엇이 백과사전다운 항목인가라는 지식간의 투쟁 역시 약해졌다. 드라마 주인공에 대한 설명이어도 기술만 잘 되어있으면 남게 되는 곳이 위키백과다. 인터넷 이후의 백과사전이 가지는 의미라면 참조 항목의 양적 성장이다. 이전에 B급문화라 얘기되던 것도 그리스 철학과 같은 형식으로 기술될 수 있다. 권위보다는 정보 그 자체로 존중받는 전달매체가 바로 인터넷이고, 백과사전 역시 그 인터넷 민주주의 내에 들어있다.





Posted by zepe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