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잡담2010. 3. 1. 22:50
어제 집에서 CD를 듣는데 75분을 넘으니까 CDP가 튀었다. 예전부터 가끔 그런 음반들이 있었다. CD를 빽빽하게 채우면 렌즈 암이 멀리까지 뻗어가야 해서 그런가 제대로 플레이를 하지 못했다. 내참 집에서 CD를 듣는데 그게 튀기까지 하면 도대체 이게 mp3보다 경쟁력은 있는거야? LP만도 못한거 아냐? 뭐 이런 생각을 했다. (사실 LP만은 못하다고 생각한다. ㅎ)

이게 어제 튀던 문제의 CD, 건즈앤 로지스의 2집 파트 1
라이센스도 아니고 미쿡반이었는데도 튀었다. (옛날 라이센스는 아마 한곡 짤렸지?)

이건 지금 듣고있는 구닥다리 사이먼 앤 가펑클의 베스트.
워낙 오래된 베스트라 이거랑 표지도 다르지만 뭐 대차없으니 이거라고 해두자.

CD가 LP보다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논거를 가지고 있다. 음질이 CD보다 좋다고 주장하는 소머즈같은 사람부터 해서, LP가 느릿느릿 돌아가는걸 보는게 좋다는 감상적인 사람까지 다양하다. 내가 봤을때 CD가 LP보다 조악하다는 느낌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품위'가 없다는 점이다.

일단 LP는 덩치가 커서 커버가 크다. 이거 무시할 수가 없다. 요새 아이팟/아이폰에서 커버를 큼직하게 지원해주는 것을 봐라. 커버가 있으면 훨씬 음악 들을 맛이 난다. 내가 뭘 듣는지 기억도 잘 나고. 요즘은 좀 덜하지만 예전 음반들은 커버만 봐도 장르와 년도와 완성도까지 대충 감이 왔다. 뻥치지 말라고? 실제로 음악 많이 들은 사람에게 물어봐라. 표지만 보고 산 음반 많다는 답을 할거다. 옛날에는 음반점 가면 A부터 Z까지 커버를 다 훑으면서 음반을 골랐는데 그러다가 딱 표지가 꼽히면 정보를 좀 더 찾아보고 지르는거다.

LP가 SP, EP를 거쳐 지배적인 매체가 되면서 LP는 점차 예술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음악과 미술(커버)과 문학(가사)이 결합한 종합 예술품이 된 것이다.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까지의 음반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품인 경우가 많았다. 아래의 샘플을 보시라. 실제로 이걸 만지작거리면 기분이 무척 좋으며 그냥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샘솟는다. 그래서 어떤 음반들은 표지만으로도 소장가치가 높다.

 
독일 그룹 파우스트의 1집. 투명 커버에 엑스레이 사진이 콱 찍혀있고, 안의 LP도 투명 재질이다.

이태리 그룹 알파타우루스의 유일작.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B29처럼 폭탄을 투하하는 장면이 3단 커버에 나뉘어 담겨있다. 3단이라는 것은 카톨릭의 제단화가 보여주는 전통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영국 그룹 제스로 툴의 앨범 Stand Up이다. 앨범 타이틀에 맞게 LP가운데를 펴면 멤버들이 발딱 일어나는 팝업북 스타일로 제작되었다.

음악보다는 커버로 먹어주는 이태리 밴드 가리발디의 Nuda

그런데 이런 화려한 LP 시대에서 갑자기 싸구려 CD의 시대로 넘어왔다. 음반 값만 두세배 오르고. 얼마나 후졌었냐면 안에 해설지 하나 없이 표지 1장만 딸랑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인쇄 상태는 말할 것도 없고. 음질이 조금 좋아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전체적인 소장가치라는 면에서는 아주 구렸다.

이거 보시라. 당시 디스켓이랑 교복 만들던 SKC가 내놓은 초기 CD인데 종이 한장 딸랑 있었다. 뭐 워너뮤직이 시켜서 그렇게 낸거에요~ 저희는 하청받기만 했어요~ 이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그 회사가 SK텔레콤이 된거니까, 여전히 사악한 서비스 정신으로 우리 모두를 감동시키고 있다.

이후 한참동안이나 구린 품질로 CD가 나오다가 mp3 나오고나선 음반업계는 박살났다. 그도 그럴것이 음반업계가 전혀 대응을 안하고 십년을 날렸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겠으며 그 사이에 음반을 그 자체로 사랑하는 팬들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토양마저 척박했던 것이다. 그래서 국내는 온라인 음원 유통업체 한두개가 휘어잡고 국내에 있는 메이저 음반사는 반쯤 철수한 상태까지 갔다. (여기에는 아이돌 가요시장이 폭발하고 팝시장이 다 죽어버렸다는 또 다른 본질적인 이유가 있긴 하다.)

요새 음반들은 그래도 나름 자구책을 낸다. 다품종 소량생산과 고품질 음반, 그리고 한정판의 유통이 그것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이란 것은 말 그대로 팬이 많지 않지만 음악성이 있는 음반을 소량만 발매해서 그걸 뿌려버리고 끝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재발매 레이블(비트볼, 미디어 아르떼, 리버맨 등)이 그렇게 살고있고 인디음반 레이블(붕가붕가나 캬바레, 루비 살롱 등)이 내놓는 음반은 초판 다 팔면 대박이다. 그래서 이런 음반들은 처음에 보일 때 안사면 못산다. -_-


이미 중고가 몇만원을 호가하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EP

고품질 음반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LP 미니어처 CD, 디럭스 에디션, 스페셜 에디션 등이 그러하다. 먼저 LP 미니어처 CD를 보자. 주로 이 세계는 일본이 꽉 잡고 있는데 안에 CD가 들어있되 모양은 LP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박스에 담아 보관한다. 여기 예를든 ELP의 경우 일본에서는 70년대에 영미권과 동시에 발매되었는데 그때 만들었던 띠지(일본어로는 오비)까지 재현한다. 이렇게 재현된 LP 미니어처 CD는 이베이 등에서 엄청 비싸게 거래된다.
Contents with promo obis on each release (the spare is another Trilogy), Emerson, Lake + Palmer - Tarkus Box and Obis


그 다음으로 디럭스 에디션은 유명한 음반을 재발매하면서 당시 여러가지 사정으로 포함되지 못했던 음원을 잔뜩 모아 2CD나 DVD를 추가한 형태로 발매하는 것이다. 이건 팬들의 덕심을 자극하는 전략으로 어지간한 명반들은 이런 식으로 죄다 재발매되는 중이다. 팬들의 등골을 뽑아먹으려고 작정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거 내가 존경하는 블랙 싸바스 형님들의 2집이다. 명반이다. 이런게 나오면 자제하기가 쉽지 않다.

이건 지금도 미국에서 매년 수익 1위를 랭크하는 U2의 Unforgettable Fire다. 역시 명반이다. 그래도 이건 참을 수 있다. 가격이 많이 비싸서 포기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건 펄 잼의 1집이다. 미쿡에서나 인기있지 여기선 별로 인기도 없는데 어쨌든 교보문고에 가보니 팔고 있더라. 가격이 한 30만원쯤 했던거 같은데.



뭐 여튼 음반 업계도 나름 자구책을 고민하고 있다. 난 근 20년간 월평균 n만원 이상씩 꼬박꼬박 음반을 사제낀 사람으로서 음반업계에 이런 것들을 요구하고 싶다.

1. 음반 품질을 높여라.

부클릿도 좀 두껍게 사진 팍팍 넣어서 만들고, CD에도 당시 LP에 찍혔던 레이블 이런거 복원하고, LP 미니어처로 만들던지 디지팩으로 만들던지 좀 재질 좋은 것 좀 쓰고, 보너스트랙도 잘 좀 주워다가 밀어넣고 그랬으면 좋겠다. 일단 사는 사람이 소장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포인트다. 어차피 이제 음반은 음악 자체로는 mp3에게 경쟁력을 잃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하지만 mp3로 들어본 사람이 사서 소장해도 마음이 뿌듯한 정도로 만들어주면 얘기가 달라진다. 단가 얘기하고 싶겠지만, 돈보다는 성의가 더 들어가지 단가에는 그리 큰 차이 안난다. 성의는 좀 필요하다.

이효리의 3집 It's Hyorish. 클래식과 정통 락을 좋아하는 내 친구가 이 판을 보여주면서 자랑했다. 야 이거 죽이지 않냐? 알고보니 안에는 이효리의 섹시한 사진이 잔뜩 있었다. 너 이거 들어봤냐 하고 내가 물어봤더니, 미쳤냐 그런걸 듣게라고 대답을 하시더구만.

2. mp3를 끼워넣어라.

사실 CD에서 mp3 만드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다. 아이튠즈가 그걸 자동으로 해준다고 좋아하면서 아이팟 사는 사람도 나는 봤다. 즉 CD는 샀겠다, 들고다니면서 듣고싶은데 mp3로 뽑지를 못해서 그러지 못하는 거다. 이건 참 슬픈 일이다. 그러다간 그 사람들도 결국 CD를 안살지 모른다. 그냥 음원을 사는게 마음이 편해질 것이니까.

기왕 mp3 만드는 김에 ID3 태그 좀 착실히 채워넣어서 주면 좋겠다. 커버도 앞뒤 잘 집어넣고, 피처링은 누가 했고 연주는 누가 했으며 이런 것들을 잘 집어넣는 것이다. 그러면 그걸 mp3 플레이어나 스마트폰에 넣었을 때 사용자가 얼마나 기뻐하겠는가. 아마 해당 음반사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가서 앞으로 거기서 나온 것이라면 좀 더 안심하고 구매할지 모른다.

이게 내가 새로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유니버설 뮤직이 명반을 LP로 재발매하면서 Back to Basics라는 시리즈를 달았는데 이 백투베이직 시리즈를 산 사람은 홈페이지에서 mp3를 다운받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CD는 아예 제작단계에서 박아버리면 되니까 훨씬 쉽다.

그러면 mp3가 더 많이 돌 것 아니냐고? 그건 사적 복제의 특성을 잘 모르는 소리다. 내가 핑크 플로이드 팬인데 내가 핑크 플로이드의 전 곡 mp3를 만들어서 당신에게 주면 당신이 그걸 다 들을거 같은가? 그렇지 않다. 음악이든 영화든 다 취향이란게 있어서 남이 권해준다고 쉽게 듣는게 아니다. 웹하드처럼 대량으로 퍼져나가는 것만 잘 막으면 된다. 그리고 그거 공짜로 다운받으려고 찾아 헤매고 받아서 커버 집어넣고 생 쑈를 하는 것 보다 그냥 음반사가 깔끔하게 정리해준 것을 돈내고 듣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아 물론 전제가 있다. 깨끗한 음질로 인코딩하고 커버와 각종 ID3 태그를 깔끔하게 잘 집어넣은 음원을 음반사가 제공할 때 그렇다는 얘기다. 부실한 서비스에 대한 대답은 불법 복제로 나타나게 되어있다.

3.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라.

얼마전에 음반사들이 모여서 한국의 빌보드를 만든다며 음악 차트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좋은 일이다. 예전 황금시대 때의 음악 순환 고리는 대충 이랬다. (1) 잡지에 기사가 난다 (2) 들어본 친구들이 서로 자랑한다 (3) 친구가 사니까 나도 사서 들어본다 (4) 그러다보니 장르에 대해 관심이 생긴다 (5) 관심을 해소하기 위해 잡지를 본다.

지금은 뭐라고 해야하나 팬들을 모아주는 구심점이 없다. 아이돌 팬카페 정도? 뭐 아이돌이야 어떻게든 해결을 하겠지만 나처럼 프로그레시브 락과 스래쉬 메탈 그리고 6-70년대 클래식 락과 80년데 포스트 펑크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실 답이 없다. 뭐 이런건 음반사가 만들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붐이 식어버린 것이라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내가 음반사라면 어떻게든지 쌓여있는 백 카탈로그를 탈탈 뒤져서 좋은 음반들을 조금씩이라도 재발매하겠다. 그리고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을 엮어주어야 한다. 옛날에는 음반사가 주관하는 음악감상회도 있었는데 뭐 그런걸 해도 좋겠고, 온라인 모임을 만들어도 좋겠지. 어쨌거나 동일한 취향을 소비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절실한데 요새는 그런 경로가 많이 막혀버렸다. 그래도 좋은 음반들이 재발매되면 조금씩 사긴 하니까. 그 음반을 사는 사람들이 편하게 얘기를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예를들어 음반을 산 사람이 리뷰를 올리면 그 사람이 다음에 음반살 때 재고 한장을 끼워준다거나 하는 행사를 할 수도 있겠고. 뭐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거라고 본다.

사실 최근 수년간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들의 공연이 좀 있었고, 그때마다 아마 가던 사람들은 계속 갔을거다. 그런데 그 공연들을 주관하는 측에서 그 사람들이랑 뭔가 같이 해보려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음반사랑 연합해서 음반도 팔고, 팬들만 모아서 뭔가 특별한 싸인회나 사진찍는 행사를 한다거나, 연락처를 모았다가 홍보메일을 보낸다거나 할 수도 있는거 아니냐. 하다못해 가장 재발매를 원하는 음반 투표를 받아 재발매를 해볼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게 전혀 안되는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요새 음악 듣는게 뭔가 재미가 없다. 같이 듣는 사람도 별로 없고, 구하고 싶은 음반 구하는 것은 꽤 힘들고, 살만한 음반도 안나오고 뭐 그러니까. 마냥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도 답은 아니니까 이렇게 몇자 긁적여본다. 뭐 음반사 관계자가 이걸 얼마나 보겠냐만.
Posted by zepe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