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잡담2010. 8. 16. 18:29


사실 그럴리가 없다. 내가 매시브 어택의 방한 소식을 보고 2초쯤 찡한 느낌이 들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하지만 오늘 본 동두천 락 페스티발이 결코 지산 못지 않았다는 느낌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아니 지산이 그만큼 후지게 운영했다는 말일 수도 있다.

1 교통
- 오리역에서 지산가는 셔틀타는데 대기 한시간이었다. 종로-분당-1시간대기-지산 이렇게 토탈 3시간 걸렸다. -_-
- 지산은 자가용에도 묻어가봤는데 분당-주차장-20분걸려 셔틀버스로 지산까지 이동 이렇게 가야했다. 이렇게 갈거면 자가용은 왜 끌고가나? 셔틀버스는 1시간 간격으로 운영했다. -_-
- 종로에서 소요산 가는데 지하철로 편도 80분에 갔다.

2 비용
- 이건 뭐 비교대상은 아닌데 지산은 3일권이 15만원을 넘었고, 동락페는 무료였다.

3 편의시설
- 지산은 고립되어 지산에서만 통용되는 가짜돈을 구매하는 등의 바가지를 써야했다.
- 동락페는 소요산자락에서 했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소요산 입구의 고기집에서 고기 꾸우면서 음악을 들을 수도 있었다. -_- 옥수수와 각종 전도 팔았으며 근처에는 슈퍼와 편의점도 있었다.
- 동락페 화장실은 간이 화장실 주제에 무척이나 좋았고, 심지어 에어컨도 나왔다.

4 그 외 코믹한 것들
- 지산은 입구부터 자동차 광고사의 음악이 들렸고 동락페는 소요산 입구부터 이박사풍의 각종 테크노 뽕짝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지산은 '강한 친구들'이 경호했는데, 동락페는 시가 운영하는거라 그런가 경찰이 와있었다. 헐.
- 지산은 네이버가 후원했는데 동락페는 누가 후원했는지 모르겠으나 스테이지 뒤에 커다란 모텔 광고가 계속 보였다. ㅎ
- 지산의 무대장치는 수준급이었으나 동락페의 무대장치는 화염방사기와 물분사기로 이루어진 올드한 방식의 포근반 것이었다. 아 화염방사기의 위엄은 정말 쩔었다. ㅎ
- 동락페는 경기도 행사라고 김문수가 축사를 보내주었다. -_-
- 지산은 각종 팬들이 모여 팬심을 과시했고, 동락페는 뭐든 음악만 나오면 뛸 준비가 된 일군의 청춘들과 동네에서 음악소리가 나니까 돗자리 들고나온 가족들이 가득했다. 솔직히 어르신들은 모두 김수철 보러 오셨더라.

총평을 해보자면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 비교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동락페가 공무원의 손길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훨씬 개선될 여지가 있고, 그렇게 되면 나름 따듯한 페스티발도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이미 동락페는 나름 꽤 따듯한 느낌이 든다. (페스티발인지는 모르겠으나 ㅎ) 솔직히 지산은 앞으로도 이정도 헤드라이너 섭외 못하면 난 별로 갈 생각이 없어졌다. 서비스가 이따위면 자생은 어렵고 계속 후지락만 바라봐야 할 것이다.

여튼 15일 공연을 대충 다 앉아 봤는데 뭐랄까 사운드도 괜찮고 전반적으로 즐거웠다. 크라잉넛은 밴드생활 15년 했는데 Crying Net이라 써있다고 하소연하더니 퇴장하면서 감사합니다, 크라잉넷이었습니다 하고 나갔다. ㅎ 블랙홀 너무 열심히 해서 뭐랄까 관록과 함께 볼만했다. 김수철이 모두 다 사랑하리를 부르는데 젊은이들은 몰라서 못따라부르더라. 대신 뒤의 어르신들이 따라해서 어쨌거나 싱얼롱이 가능했다. NEXT가 시작부터 레드 제플린의 Immigrant Song을 불러 이건 뭥미 하고 있었는데 해철이형 너무 오바했고 또 사운드를 잘 못잡아서 보컬이 거의 안들리다시피 했다. 헤드라이너인 YB는 안봤다. 싫어하거든. ㅎ

어제 시간이 있었더라면 가서 볼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옥슨 80이나 사랑과 평화, 이치현과 같은 추억속의 뮤지션들도 있지만, 김목경의 연주도 그리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서울전자음악단이 있었으니 김종서, 봄여름가을겨울처럼 아웃옵안중 뮤지션이 있다 하더라도 충분히 즐길만 했을거 같다.

어쨌거나 이정도 라인업은 뭐라고 할까 꽤 컨셉도 있었다고 봐야한다. 14일은 8090 컨셉이고 15일은 대체로 메탈과 헤비사운드로 깔았거든. 후지락에 맞춰 되는대로 뮤지션들을 모아둔 지산에 비하면 훨씬 색깔은 분명하다.

동락페는 일단 동두천이라는 도시 이름을 너무 전면에 세우지 말고, 약간 이름을 바꿔보면 시골틱한 이미지를 좀 지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있을까. 수퍼 세션 뮤직 페스티발 이렇게 격하게 나가본다거나? ㅎㅎ) 그리고 도심(청량리도 도심이니)에서 1시간 거리라는 것을 강조해보면 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 먼 곳은 아니다. 페스티발 기간에만 급행열차를 운행해볼 수도 있겠고.

결론은 이거다. 그동안 동락페 무시한거 미안했다. 이제 신경쓸란다. 동락페 화이팅.
Posted by zepelin
음악 잡담2010. 3. 1. 22:50
어제 집에서 CD를 듣는데 75분을 넘으니까 CDP가 튀었다. 예전부터 가끔 그런 음반들이 있었다. CD를 빽빽하게 채우면 렌즈 암이 멀리까지 뻗어가야 해서 그런가 제대로 플레이를 하지 못했다. 내참 집에서 CD를 듣는데 그게 튀기까지 하면 도대체 이게 mp3보다 경쟁력은 있는거야? LP만도 못한거 아냐? 뭐 이런 생각을 했다. (사실 LP만은 못하다고 생각한다. ㅎ)

이게 어제 튀던 문제의 CD, 건즈앤 로지스의 2집 파트 1
라이센스도 아니고 미쿡반이었는데도 튀었다. (옛날 라이센스는 아마 한곡 짤렸지?)

이건 지금 듣고있는 구닥다리 사이먼 앤 가펑클의 베스트.
워낙 오래된 베스트라 이거랑 표지도 다르지만 뭐 대차없으니 이거라고 해두자.

CD가 LP보다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논거를 가지고 있다. 음질이 CD보다 좋다고 주장하는 소머즈같은 사람부터 해서, LP가 느릿느릿 돌아가는걸 보는게 좋다는 감상적인 사람까지 다양하다. 내가 봤을때 CD가 LP보다 조악하다는 느낌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품위'가 없다는 점이다.

일단 LP는 덩치가 커서 커버가 크다. 이거 무시할 수가 없다. 요새 아이팟/아이폰에서 커버를 큼직하게 지원해주는 것을 봐라. 커버가 있으면 훨씬 음악 들을 맛이 난다. 내가 뭘 듣는지 기억도 잘 나고. 요즘은 좀 덜하지만 예전 음반들은 커버만 봐도 장르와 년도와 완성도까지 대충 감이 왔다. 뻥치지 말라고? 실제로 음악 많이 들은 사람에게 물어봐라. 표지만 보고 산 음반 많다는 답을 할거다. 옛날에는 음반점 가면 A부터 Z까지 커버를 다 훑으면서 음반을 골랐는데 그러다가 딱 표지가 꼽히면 정보를 좀 더 찾아보고 지르는거다.

LP가 SP, EP를 거쳐 지배적인 매체가 되면서 LP는 점차 예술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음악과 미술(커버)과 문학(가사)이 결합한 종합 예술품이 된 것이다.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까지의 음반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품인 경우가 많았다. 아래의 샘플을 보시라. 실제로 이걸 만지작거리면 기분이 무척 좋으며 그냥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샘솟는다. 그래서 어떤 음반들은 표지만으로도 소장가치가 높다.

 
독일 그룹 파우스트의 1집. 투명 커버에 엑스레이 사진이 콱 찍혀있고, 안의 LP도 투명 재질이다.

이태리 그룹 알파타우루스의 유일작.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B29처럼 폭탄을 투하하는 장면이 3단 커버에 나뉘어 담겨있다. 3단이라는 것은 카톨릭의 제단화가 보여주는 전통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영국 그룹 제스로 툴의 앨범 Stand Up이다. 앨범 타이틀에 맞게 LP가운데를 펴면 멤버들이 발딱 일어나는 팝업북 스타일로 제작되었다.

음악보다는 커버로 먹어주는 이태리 밴드 가리발디의 Nuda

그런데 이런 화려한 LP 시대에서 갑자기 싸구려 CD의 시대로 넘어왔다. 음반 값만 두세배 오르고. 얼마나 후졌었냐면 안에 해설지 하나 없이 표지 1장만 딸랑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인쇄 상태는 말할 것도 없고. 음질이 조금 좋아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전체적인 소장가치라는 면에서는 아주 구렸다.

이거 보시라. 당시 디스켓이랑 교복 만들던 SKC가 내놓은 초기 CD인데 종이 한장 딸랑 있었다. 뭐 워너뮤직이 시켜서 그렇게 낸거에요~ 저희는 하청받기만 했어요~ 이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그 회사가 SK텔레콤이 된거니까, 여전히 사악한 서비스 정신으로 우리 모두를 감동시키고 있다.

이후 한참동안이나 구린 품질로 CD가 나오다가 mp3 나오고나선 음반업계는 박살났다. 그도 그럴것이 음반업계가 전혀 대응을 안하고 십년을 날렸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겠으며 그 사이에 음반을 그 자체로 사랑하는 팬들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토양마저 척박했던 것이다. 그래서 국내는 온라인 음원 유통업체 한두개가 휘어잡고 국내에 있는 메이저 음반사는 반쯤 철수한 상태까지 갔다. (여기에는 아이돌 가요시장이 폭발하고 팝시장이 다 죽어버렸다는 또 다른 본질적인 이유가 있긴 하다.)

요새 음반들은 그래도 나름 자구책을 낸다. 다품종 소량생산과 고품질 음반, 그리고 한정판의 유통이 그것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이란 것은 말 그대로 팬이 많지 않지만 음악성이 있는 음반을 소량만 발매해서 그걸 뿌려버리고 끝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재발매 레이블(비트볼, 미디어 아르떼, 리버맨 등)이 그렇게 살고있고 인디음반 레이블(붕가붕가나 캬바레, 루비 살롱 등)이 내놓는 음반은 초판 다 팔면 대박이다. 그래서 이런 음반들은 처음에 보일 때 안사면 못산다. -_-


이미 중고가 몇만원을 호가하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EP

고품질 음반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LP 미니어처 CD, 디럭스 에디션, 스페셜 에디션 등이 그러하다. 먼저 LP 미니어처 CD를 보자. 주로 이 세계는 일본이 꽉 잡고 있는데 안에 CD가 들어있되 모양은 LP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박스에 담아 보관한다. 여기 예를든 ELP의 경우 일본에서는 70년대에 영미권과 동시에 발매되었는데 그때 만들었던 띠지(일본어로는 오비)까지 재현한다. 이렇게 재현된 LP 미니어처 CD는 이베이 등에서 엄청 비싸게 거래된다.
Contents with promo obis on each release (the spare is another Trilogy), Emerson, Lake + Palmer - Tarkus Box and Obis


그 다음으로 디럭스 에디션은 유명한 음반을 재발매하면서 당시 여러가지 사정으로 포함되지 못했던 음원을 잔뜩 모아 2CD나 DVD를 추가한 형태로 발매하는 것이다. 이건 팬들의 덕심을 자극하는 전략으로 어지간한 명반들은 이런 식으로 죄다 재발매되는 중이다. 팬들의 등골을 뽑아먹으려고 작정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거 내가 존경하는 블랙 싸바스 형님들의 2집이다. 명반이다. 이런게 나오면 자제하기가 쉽지 않다.

이건 지금도 미국에서 매년 수익 1위를 랭크하는 U2의 Unforgettable Fire다. 역시 명반이다. 그래도 이건 참을 수 있다. 가격이 많이 비싸서 포기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건 펄 잼의 1집이다. 미쿡에서나 인기있지 여기선 별로 인기도 없는데 어쨌든 교보문고에 가보니 팔고 있더라. 가격이 한 30만원쯤 했던거 같은데.



뭐 여튼 음반 업계도 나름 자구책을 고민하고 있다. 난 근 20년간 월평균 n만원 이상씩 꼬박꼬박 음반을 사제낀 사람으로서 음반업계에 이런 것들을 요구하고 싶다.

1. 음반 품질을 높여라.

부클릿도 좀 두껍게 사진 팍팍 넣어서 만들고, CD에도 당시 LP에 찍혔던 레이블 이런거 복원하고, LP 미니어처로 만들던지 디지팩으로 만들던지 좀 재질 좋은 것 좀 쓰고, 보너스트랙도 잘 좀 주워다가 밀어넣고 그랬으면 좋겠다. 일단 사는 사람이 소장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포인트다. 어차피 이제 음반은 음악 자체로는 mp3에게 경쟁력을 잃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하지만 mp3로 들어본 사람이 사서 소장해도 마음이 뿌듯한 정도로 만들어주면 얘기가 달라진다. 단가 얘기하고 싶겠지만, 돈보다는 성의가 더 들어가지 단가에는 그리 큰 차이 안난다. 성의는 좀 필요하다.

이효리의 3집 It's Hyorish. 클래식과 정통 락을 좋아하는 내 친구가 이 판을 보여주면서 자랑했다. 야 이거 죽이지 않냐? 알고보니 안에는 이효리의 섹시한 사진이 잔뜩 있었다. 너 이거 들어봤냐 하고 내가 물어봤더니, 미쳤냐 그런걸 듣게라고 대답을 하시더구만.

2. mp3를 끼워넣어라.

사실 CD에서 mp3 만드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다. 아이튠즈가 그걸 자동으로 해준다고 좋아하면서 아이팟 사는 사람도 나는 봤다. 즉 CD는 샀겠다, 들고다니면서 듣고싶은데 mp3로 뽑지를 못해서 그러지 못하는 거다. 이건 참 슬픈 일이다. 그러다간 그 사람들도 결국 CD를 안살지 모른다. 그냥 음원을 사는게 마음이 편해질 것이니까.

기왕 mp3 만드는 김에 ID3 태그 좀 착실히 채워넣어서 주면 좋겠다. 커버도 앞뒤 잘 집어넣고, 피처링은 누가 했고 연주는 누가 했으며 이런 것들을 잘 집어넣는 것이다. 그러면 그걸 mp3 플레이어나 스마트폰에 넣었을 때 사용자가 얼마나 기뻐하겠는가. 아마 해당 음반사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가서 앞으로 거기서 나온 것이라면 좀 더 안심하고 구매할지 모른다.

이게 내가 새로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유니버설 뮤직이 명반을 LP로 재발매하면서 Back to Basics라는 시리즈를 달았는데 이 백투베이직 시리즈를 산 사람은 홈페이지에서 mp3를 다운받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CD는 아예 제작단계에서 박아버리면 되니까 훨씬 쉽다.

그러면 mp3가 더 많이 돌 것 아니냐고? 그건 사적 복제의 특성을 잘 모르는 소리다. 내가 핑크 플로이드 팬인데 내가 핑크 플로이드의 전 곡 mp3를 만들어서 당신에게 주면 당신이 그걸 다 들을거 같은가? 그렇지 않다. 음악이든 영화든 다 취향이란게 있어서 남이 권해준다고 쉽게 듣는게 아니다. 웹하드처럼 대량으로 퍼져나가는 것만 잘 막으면 된다. 그리고 그거 공짜로 다운받으려고 찾아 헤매고 받아서 커버 집어넣고 생 쑈를 하는 것 보다 그냥 음반사가 깔끔하게 정리해준 것을 돈내고 듣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아 물론 전제가 있다. 깨끗한 음질로 인코딩하고 커버와 각종 ID3 태그를 깔끔하게 잘 집어넣은 음원을 음반사가 제공할 때 그렇다는 얘기다. 부실한 서비스에 대한 대답은 불법 복제로 나타나게 되어있다.

3.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라.

얼마전에 음반사들이 모여서 한국의 빌보드를 만든다며 음악 차트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좋은 일이다. 예전 황금시대 때의 음악 순환 고리는 대충 이랬다. (1) 잡지에 기사가 난다 (2) 들어본 친구들이 서로 자랑한다 (3) 친구가 사니까 나도 사서 들어본다 (4) 그러다보니 장르에 대해 관심이 생긴다 (5) 관심을 해소하기 위해 잡지를 본다.

지금은 뭐라고 해야하나 팬들을 모아주는 구심점이 없다. 아이돌 팬카페 정도? 뭐 아이돌이야 어떻게든 해결을 하겠지만 나처럼 프로그레시브 락과 스래쉬 메탈 그리고 6-70년대 클래식 락과 80년데 포스트 펑크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실 답이 없다. 뭐 이런건 음반사가 만들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붐이 식어버린 것이라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내가 음반사라면 어떻게든지 쌓여있는 백 카탈로그를 탈탈 뒤져서 좋은 음반들을 조금씩이라도 재발매하겠다. 그리고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을 엮어주어야 한다. 옛날에는 음반사가 주관하는 음악감상회도 있었는데 뭐 그런걸 해도 좋겠고, 온라인 모임을 만들어도 좋겠지. 어쨌거나 동일한 취향을 소비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절실한데 요새는 그런 경로가 많이 막혀버렸다. 그래도 좋은 음반들이 재발매되면 조금씩 사긴 하니까. 그 음반을 사는 사람들이 편하게 얘기를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예를들어 음반을 산 사람이 리뷰를 올리면 그 사람이 다음에 음반살 때 재고 한장을 끼워준다거나 하는 행사를 할 수도 있겠고. 뭐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거라고 본다.

사실 최근 수년간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들의 공연이 좀 있었고, 그때마다 아마 가던 사람들은 계속 갔을거다. 그런데 그 공연들을 주관하는 측에서 그 사람들이랑 뭔가 같이 해보려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음반사랑 연합해서 음반도 팔고, 팬들만 모아서 뭔가 특별한 싸인회나 사진찍는 행사를 한다거나, 연락처를 모았다가 홍보메일을 보낸다거나 할 수도 있는거 아니냐. 하다못해 가장 재발매를 원하는 음반 투표를 받아 재발매를 해볼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게 전혀 안되는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요새 음악 듣는게 뭔가 재미가 없다. 같이 듣는 사람도 별로 없고, 구하고 싶은 음반 구하는 것은 꽤 힘들고, 살만한 음반도 안나오고 뭐 그러니까. 마냥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도 답은 아니니까 이렇게 몇자 긁적여본다. 뭐 음반사 관계자가 이걸 얼마나 보겠냐만.
Posted by zepelin
음악 잡담2009. 3. 7. 01:14

1. 근대?

딱히 뭔가를 결산할 정도의 내공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요즘 하도 상황이 어수선하게 바뀌어 나의 음악 매체 편력기를 몇자 적어보려 한다.

음악을 처음에 듣기 시작한 것은 1990년 경이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듣기 시작했는데 메탈리카의 Metallica 앨범이 91년에 나왔고 그 때가 나 중3때였으니까 맞을거다. 제일 처음 샀던 테이프는 친구가 마음에 안들면 공테이프로 쓰라고 팔았던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의 테이프로 성음에서 발매된 것이었다. 그 때 이후로 열심히 라이센스 테이프들을 사서 주로 빌보드 히트곡들을 들었다.

LP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테이프의 음질이 너무 나쁜데 LP와 테이프의 가격차이가 1000원밖에 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했을 시점이었다. 당시 테이프는 2000~2500원, LP는 3500원 정도 했던 기억이 난다. 가장 처음에 산 LP는 스티비 비의 Love and Emotion이었다. 언젠가부터 빌보드는 대략 졸업하고 주로 메탈을 듣기 시작했는데 너바나의 Nevermind가 발매되는 날 판가게로 열심히 뛰어가서 샀던 기억이 난다.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는 2LP라서 값도 두배인지라 아 저걸 살까 말까 고민했던 기억도 나고 마일즈 데이비스의 Bitches Brew는 너무 난해한 주제에 2LP여서 본전생각이 났더랬다. 어쨌든 내가 마음을 준 첫 매체는 단연 LP였다.

라디오는 거의 듣지 않았다. 전영혁이나 배철수를 가끔 듣긴 했지만, 내가 곡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 싫었던게 아닌가 싶다. 나는 지금도 라디오를 거의 듣지 않는다. 가끔 아무 생각없이 AOL 라디오의 채널을 선택해 둘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뿐이다. 빽판도 나는 거의 막차였다. 빽판까지 듣지 않아도 열심히 고르면 라이센스 LP 중에서 들을만한 것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빽판까지 들어야 할 정도로 내공이 당시 있었던 것도 아니다. 레코드점에서 불법으로 테이프에 녹음해서 듣는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그건 좀 아니다 싶어서 한두번 하다가 말았다. 건즈 앤 로지스의 Use Your Illusion I의 금지곡 덕에 녹음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프로그레시브 락은 몰랐다. 난 메탈 아니면 음악이 아닌 줄 알았다.

CD를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익스트림의 Pornograffitti 때문이었다. 금지곡이 많았는데 영 라이센스도 안나오고 제대로 구할 루트가 없었다. 한 장에 15000원 정도 했으니까 LP 4장 이상의 값이다. 아 정말 그때부터 CD는 나름 비호감 매체였다. 나는 LP에서 CD로 옮겨가면서 가격이 그렇게 올라간 것은 업계의 음모라고 본다. 유통비와 매체비 모두 LP가 CD보다 비싸면 비쌌지 쌀 리가 없다는 것은 중딩도 계산할 수 있었다. 결국 그때 CD같이 정성이 부족한 매체로 가격만 올려놓은 탓에 지금처럼 CD는 멋이 없는 매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CD가 LP의 우아함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CD가 디지털 음원에 급격하게 밀리진 않았을 것이다. 말이 돌았는데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CD와 LP의 구매 비율은 비슷해졌다. 구매력도 생겼기 때문이고 LP의 생산이 줄었기 때문이다. MD는 거의 듣지 않았다. CD를 굳이 녹음까지 해서 들어야 하는 요상한 매체였고, 나는 이미 타인의 CD를 빌려서 녹음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욕망을 채울 수 없는 꼬마 수집가였다. 일본 친구가 가끔 MD에 드림 씨어터의 부틀랙 이런 것을 녹음해서 보내준지라 그런 것들을 가끔 듣긴 했다.

CD계에 하나의 혁명이 있었다면 그것은 CD라이터의 등장이었다. 오만 어두운 컨텐츠가 라이터를 통해 구워졌지만 우리는 지인들의 CD를 빌려서 구워들을 수 있다는 것에 흥분했다. 가끔 모여서 CD도 굽고 부클릿도 칼라복사까지 하면서 야매 CD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들 머잖아 그것이 허무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구운 CD는 잘 안듣게 되더라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난 아직 구운 CD를 수십장 가지고 있다.

내 음악 매체 편력의 근대를 여기까지라고 해서 정산해보면 난 1990년부터 2005년 정도까지 대략 15년간을 주로 오프라인 매체를 통해 음악을 들어왔으며 그 15년간 대략 7-8000장 정도의 음악을 들은 것 같고 지금은 CD와 LP가 각각 1500-2000장 정도 되는 것 같다. 어지간한 사람이 평생 지출할 컨텐츠 비용을 압축적으로 지불했다고 봐도 좋을거다.

2. 현대?

mp3를 처음 들었던 것은 아마 학교 내에 있는 불법 AOD 서버 덕분이었을 거다. 히트곡을 모아서 내부에 서비스하는 불법 서버가 있었다. 아무래도 쉽게 음악을 접할 수 있었으니까 좋았다. 그 당시 내가 mp3에 집착했던 것은 에이펙스 트윈 때문이었다. 당시 어떤 AOD 서버에 에이펙스 트윈의 음반 대부분이 있었다. 국내에서는 고작 ...I care because you do 정도를 구할 수 있을 뿐이었고 그것도 근 2만원 돈을 주어야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AOD 서버에서 계속 짤려나가면서도 계속 시도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열심히 다운받았다. 이후 당나귀니 오디오 갤럭시니 소리바다니 하는 스토리는 굳이 적지 않아도 다들 아시리라. 그중 오디오 갤럭시는 잊을 수 없는데, 나는 그 서비스를 통해 데이빗 실비언의 음원 대부분을 들어볼 수 있었다. 나는 약간 전작주의자 성향이 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뮤지션을 만나면 그의 데모 테이프부터 근작까지 일단 섭렵하는 스타일로 음악을 듣는다. 가끔 레어한 음원을 찾으면 기분이 참 좋았다. 물론 그 순간 뿐이었지만. 마치 택배를 뜯는 기분처럼 말이다. 택배가 오기 전까지는 설레지만 한번 뜯고 CD를 듣고나면 금방 식어버리는 그 허무한 쾌감.

mp3도 CD에 구워서 보관했다. mp3는 아마 구운 CD로 2-300장은 있을거다. mp3 굽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하드값이 점점 내려가면서 급기야 동일용량 대비 하드가격이 공 CD 가격보다 떨어졌다. 지금은 500기가 하드 너댓게에 mp3가 가득 들어있다.

이쯤되면 문제의 양상은 조금 달라지게 된다. mp3를 정리조차 할 수가 없게 된다. 한때는 엑셀에 어떤 앨범이 몇번 CD에 있는지 정리해두고 검색을 했었다. CD 안의 파일 정보만 모아서 개인 PC에서 DB처럼 쓸 수 있게 만드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이 넘어가면 그 짓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은 ABC 순서대로 된 것도 있고 장르별로 된 것도 있고 뭐랄까 mp3 정리 상태가 영 개판이다. 이제 대충 포기했다.

mp3가 되면서 달라지는 양상은 사실 한두가지가 아니다. 하드 용량과 네트워크 비용이 싸지면서 점차 고음질로 압축한 것을 듣게 된다. 머잖아 무손실 압축인 flac 파일이나 ape 파일이 대세가 될 것이다. 다운받아 듣는 주제에 음질에 계속 신경을 써가면서 다운받는 웃기는 사태가 발생하는거다. 그리고 mp3에는 음반에 적혀있는 정보가 거의 없다. 따라서 음반을 읽으면서 그 안에 있는 정보를 습득하거나 사진을 감상하는 행위가 원천봉쇄된다. 아니 매체를 만지는 행위 자체가 없어진다. 그것은 음반이 주던 공감각적인 정보와 쾌감이 없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이건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LP에서 CD로 옮겨가면서 바로 이 부분이 사라진 것인데 mp3로 가면서 그 부분이 더욱 거세되었기 때문이다. 음악듣기라는 총체적인 행위에서 음반이라는 부분이 없어지는 것이고, 아직도 mp3를 거부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바로 이 부분에서 저항중인 것이라고 봐도 될 정도이다.

mp3의 보편화로 발생한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바로 조급해진다는 점이다. 테이프와 LP의 공통점이 있었다면 바로 갈아끼웠어야 했다는 점이다. 특히 테이프는 1번 곡부터 꼼짝없이 다 들어야 했고, LP는 곡단위 이동은 가능했지만 상당히 귀찮았다. 따라서 A면, B면 전체를 듣는다는 행위는 유지되었고 따라서 앨범을 듣는다는 행위가 심리적인 것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성립할 수 있었다. CD는 A면 B면의 구분도 없어지고 트랙간의 이동도 비교적 쉬운 편이었지만 리모컨을 찾아서 누르거나 버튼을 여러번 눌러 트랙을 넘겨야 한다는 최후의 보루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PC에서 mp3를 들으면 그런 장벽이 완전히 사라진다. 헤드폰을 꼽고 듣다가 갑자기 다른 앨범이나 다른 곡으로 넘기는게 클릭질 한번이면 된다.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다는 차분한 행위 자체가 쉽지 않아졌다.

사실 A면 B면이라는 구분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20~25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적절한 단위인지 증명한 글을 읽은 적은 없지만 나는 A면 듣고 B면 듣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25분 정도면 지루하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적당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영혁은 마음놓고 라디오 DJ 주제에 한 면 전곡 감상이라는 과격한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뮤지션은 앨범을 만들면서 LP의 시간 구분을 의식하면서 만들었다. LP시대에 나온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생각없이 CD로 듣는 것과 A면 B면을 의식하면서 LP를 뒤집어가며 듣는 것은 꽤 다른 감상을 준다. 그건 뮤지션의 의도가 LP에 준하여 반영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40분~75분이라는 CD의 길이는 한번에 듣기 쉽지 않다. 다르게 표현하면 인간적이지 않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앨범의 길이가 길면 만드는 뮤지션도 힘드니까 예전같았으면 잘랐을 곡(filler)들도 채워넣고 해서 결국 음반의 밀도도 떨어지고 뭐 그런 악순환이 발생한다. 내 생각에 CD라는 매체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만든 대표적 앨범으로 로저 워터스의 Amused to Death가 있는데 이 앨범은 상당히 훌륭한데도 불구하고 솔직히 처음부터 끝까지 듣기가 영 쉽지 않다.

이 상황은 mp3로 들어오면서 더욱 악화되었다. PC상의 플레이어에 곡을 넣고 넘기고 하는 것이 너무나 쉬워진 나머지 듣다가 여차하면 다른 트랙으로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이다. 끝까지 참을성있게 곡을 듣는 경우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특히 10~20분쯤 되는 트랙들은 듣다가 끝까지 못듣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건 하드에 있는 mp3를 들을 때도 그랬지만 웹상의 AOD 서비스를 들을 때 더욱 그러한 듯 하다. 마치 듣는 것 보다 찾는 행위에 더 집착하는 것 같다. 뭔가 한 곡을 듣다보면 다른 음악이 생각나고 그걸 찾아서 듣는 동시에 또 다른 음악을 찾는 것이다. 이쯤되면 조급증과 집착이라는 표현을 써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디지털 다운로드만으로 출시되는 음반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매싱 펌킨스의 Rarities and B-Sides같은 경우는 114트랙이고 8시간 10분짜리 박스셋이다. 이게 디지털로만 발매되어 매체 구분 없이 트랙 번호만 쭈르륵 달려있다. 이쯤되면 뭔가 단위를 가진 음악 감상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폴더라도 나누어서 Gish Days, Siamese Days 이런 식으로 시기를 좀 구분해주어야 감상이 가능할텐데 말이다. 사실 이건 기존의 많은 컴필레이션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산울림의 초기 8장짜리 전작 박스셋은 앨범의 형식을 파괴하면서까지 곡들을 우겨넣었다. CD1에 1집 + 2집의 A면, CD2에 2집의 B면 + 3집, ... 이런 식이었던게다. 원래의 창작의도까지 훼손하는 컴필레이션이라니 이런 것은 좀 아니지 않나 싶었는데 요즘 나오는 컴필레이션은 나날이 그 정도가 심해진다.

그리고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가 되어 그런가 하루가 멀다하고 발매되는 재발매 음반과 라이브 음원들은 이제 거의 따라갈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킹 크림즌의 미공개 라이브 음원들은 현재 DGMlive 사이트에서 170여종이 mp3로 다운로드 가능하고 이중 40여종은 CD로 발매된 상태이다. 그래도 킹 크림즌은 40년간의 음원이니까 나름 양반이다.  잼의 오피셜 부틀랙 시리즈는 현재 260종이 나와있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의 라이브 음원 대부분이 CD로 발매된 셈이다. 지미 헨드릭스는 제대로 활동한 것이 고작 3-4년인데 지금까지도 계속 음원이 나오고 있고 프랭크 자파는 7-80종의 공식적인 앨범을 내놓고 죽었지만 (그리고 죽은 다음에도 미공개 음원이 계속 발매되고 있지만!) 요즘 뮤지션들의 라이브 재발매 현황은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기분까지 들 정도이다.

이런 무차별적인 음원 출시 붐은 사실 인터넷 시대의 mp3 범람 현상과 분명 관계가 있다. 프랭크 자파는 1991년에 Beat the Boots라는 이름으로 이미 오피셜 부틀랙 박스셋을 발매해 여기서도 선구적 업적(?)을 남겼는데 이제 mp3 덕에 수많은 부틀랙들이 전지구적으로 유통되고 있는지라 뮤지션들로서는 그에 대한 공식적인 대응이 필요했나보다. 그런 붐에 힘입어 헨리 카우같은 정말 듣는 이 없는 밴드도 10장짜리 미공개 라이브 모음집을 낼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되어 음반의 형식은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LP/EP/싱글 이정도였는데 요새는 LP/EP/싱글/비공식 라이브/리믹스/아웃테이크 등 난리 부르스 수준이다.

3. 포스트 모던?

지금 내가 mp3로 음원 구하는 경로를 공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what.cd와 같은 폐쇄형 토런트 음원 공유 커뮤니티
 2) 음악 동호회의 자료실
 3) rapidshare와 megaupload와 같은 다운로드 서비스를 링크하고 있는 블로그 검색
 4) spotify와 같은 AOD 서비스

여기를 훑으면 솔직히 말해 구하지 못할 음원이 별로 없을 정도이다. 찾는 시간이 좀 걸리고 들을 시간이 없는게 문제인거지 이미 음원의 한계는 없어졌다고 봐야 한다. 예전엔 참으로 강렬하게 가졌던 아 저 명반 한번 듣고싶다...이런 욕구는 어지간하면 해소가 된다는 뜻이다. 잘 못구하겠으면 음악 동호회에 가서 듣고싶어요~ 하고 부탁 한번만 해도 어지간한 것은 서로 구해서 돌려준다. 내가 음반보다 이런 디지털 음원으로 더 많은 음악을 듣게 된 것은 최근 2년 정도 사이의 변화이다. mp3가 너무 많아졌다는 것과 내가 들고다니던 휴대용 CDP가 더이상 생산이 안되거나 생산되더라도 너무 쉽게 고장나게 되었다는 것이 중첩되어 벌어진 일이다.

이렇게 구구절절 나의 음악 매체 편력기를 적은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음악을 열심히 들어온 것이 이제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지금까지처럼 어지러웠던 시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CD시대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평화롭게 듣고 마음에 안들면 장터에 가서 내다 팔기만 하면 되었다. 음악도 내가 소화가능한 수준만 공급되었고 내가 찾기위해 충분히 노력을 하지 않는 한 그 음악들이 스스로 다가와서 나를 귀찮게 굴지는 않았다. 그런데 요즘에는 만지는 즐거움이 없어졌고, 매체가 주는 정보량 자체는 많아진듯 하면서도 부실해졌고, 들어야 할 음악은 너무 많고, 새로운 음악들이 너무 많이 나오고, 정리는 잘 안되는 등 나를 어지럽게 할 뿐만 아니라 나로 하여금 많은 노력을 하게 만들고 있다. 음악계도 자본의 속도 만큼이나 변화가 빨라지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나는 지금 음악 팬이기도 하지만 음악 서비스에 일부 개입되어 있기도 하니 내맘대로 예측해본다. 점차 무손실 음원이 더 많이 유통될 것은 기정 사실이고, 웹 상에 음반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가득 차게 될 것이다. CD가 금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다품종 소량생산의 길로 들어선 것은 사실이라 발매 후에 얼른 사지 않으면 절판되는 것이 많아질 것이다. 온라인으로만 유통되는 음원도 많아질 것이다. 무료 AOD 서비스는 확실히 늘어갈 것이며 그 주력 비즈니스 모델은 일단 광고일 것이다. 라디오 광고같은 것을 곡과 곡 사이에 삽입하거나 아니면 플레이어 옆에 배너광고 같은 것이 도는 것은 전통적인 광고모델이고 구색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곡 자체를 듣게 만드는 것이 프로모션으로 정착할 수도 있다. 까페/블로그의 BGM은 한동안 주된 음원 수익 모델일 것이고 합법적 mp3 다운로드 시장이 성장할 것도 맞는 듯 하다. 대신 유통업체가 저작권 문제를 비교적 산뜻하게 해결하고 음원 커버리지를 늘리지 않으면 안된다. 사용자들에게 음악을 찾아 헤매는 수고를 덜어주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스포티파이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무척 고무적이다.

음반쪽은 어떨까. 기본적으로 양극화가 될 것이라 가정하면 mp3 다운로드나 AOD가 가장 싼 가격에 속할 것이므로 비싼 것은 스페셜 패키지나 한정판 같은 형태가 좀 더 정착할 가능성이 높다. 공연+음반, mp3+음반 등과 같은 복합 상품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15년 전에 나왔던 CD 중 상당수가 부식되어가고 있어 문제가 좀 있는 상황인데, 그런 것들에 대한 합리적인 AS가 가능한 형태의 상품이 나올 수도 있겠다. 사실 나는 이미 음반이 필수재(소비재?)가 아니라 사치재로 전환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즉 스페셜 패키지로 가는 것이 정상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미친듯 비싼 십만원대의 음반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고 mp3로는 채워지지 않는 형태의 정성이 투영된, 적어도 LP시절의 우아함 비슷한 것이라도 담기지 않는 한 팔릴 이유가 없다고 본다.

먼저 왜 음악시장이 지금처럼 변화되었는가를 고민해봐야 한다. 사실 음악시장은 원래 음반 위주가 아니라 공연 위주였다. 그러다가 SP, single, EP. LP. CD로 매체가 발전하면서 급격하게 성장해 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음악산업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인터넷과 mp3가 보편화되는 과정에서 음악업계는 매체에 대한 특성을 파악하는데 실패하고 DRM을 통한 통제를 시도하여 결국 음반시장이 디지털 음원시장으로 적절히 이동되지 못했다. 현재 디지털 음원시장은 벨소리, 컬러링, 까페/블로그의 BGM 등으로 나뉘어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안정적인 시장으로 정착할 것인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mp3 다운로드 시장도 마찬가지다. 프린스와 라디오헤드같은 몇몇 뮤지션들은 음반은 음악의 홍보 매체로 활용하고 주된 수익은 공연으로 내려는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좀 더 거시적인 형태의 비전이 담길 수도 있다. 예를들어 음악 자체가 아예 공공재화 하여 TV 수신료같은 것을 받는 대신 누구나 어떤 음악이든 들을 수 있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돈은 플레이된 횟수를 카운트하여 n으로 나누되 최대값과 최소값을 규정하는 식으로 분배가 가능할 수 있다. 또 다른 형태를 생각해본다면 음반을 살 수 있는 쿠폰 10만원권을 살 경우 잡지와 AOD 6개월 이용권을 주는 것이다. 잡지는 음반 유통을 촉진시킨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는 매체인데 지금 한국의 음악 잡지는 거의 고사상태로 가고있다. 그리고 AOD를 통해 충분히 들어본 다음 10만원 쿠폰으로 음반을 사게 한다면 사람들이 죄의식을 가지지 않고 음악을 충실히 소비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음악산업이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을 때를 기억해볼 필요가 있다. 공연, 음반, 잡지, 방송 등이 유기적으로 엮였을 때 음악산업은 막대한 수익을 만들 수 있었다. 지금은 이전의 요소들에 새로 생긴 mp3, 유튜브, 블로그, 까페 등이 더 있다. 새로운 요소들이 옛 요소들을 마냥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완하게 할 수 있을까, 해결책은 거기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음악 청자들이 존재한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범법자로 몰지 말고, 그들이 음악을 충분히 즐기면서 대가를 지불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예전처럼 대박을 기대하지 말고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한다는 느낌으로 시장을 새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역시 핵심은 성의이다. 먼저 업자들부터 성의를 보여야 한다. 지갑이 열리는 것은 그 이후이다.

-- 거북이 2009-3-5 12:27 am

Posted by zepelin